[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적지 않은 영화와 달리 드라마나 예능은 굳이 철학을 담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럴 여유도 없고, 그걸 원하는 시청자도 없기에 그랬다간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불이익이 오기 때문이며, 그런 예술적이고 작가적인 인력이 투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16일 마지막으로 방송된 tvN ‘윤식당2’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매우 심오한 철학적 설파를 남겼다. 바로 행복의 조건과 자신만의 삶에 대한 고찰이었다.

스페인 가라치코에 차려진 ‘윤식당’을 찾은 한 현지 손님이 “한국은 세계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말하자 다른 손님이 “말도 안 된다. 정말 끔찍하다”라고 응수했다. 한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밤새 공부하고, 입사하면 하루에 12시간씩 일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돈 버는) 일은 조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라는 게 그들의 삶의 신조이자 인생을 바라보는 철학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5년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회원국 중 주당 평균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터키에 이어 2위였다.

이런 초인적 근무시간에 비해 급여는 불균형적이다. 비정규직투성이고, 정규직도 ‘위’에 찍히면 살아남기 힘들기에 과잉 충성 강요 및 성범죄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나마도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다. 노인 혐오증이 증가하는 이유 중엔 젊은이들이 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란 보도도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정서와 문화를 단 한 단어로 규정하는 게 바로 ‘빨리빨리’다. 이 성급한 문화에 더해 해외 열강들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린 결과 극단적 이념대결로 국론은 분열됐고, 그 혼란 속에서의 가치관은 오로지 ‘돈’으로 굳어졌다. ‘있는 놈이 더해’라는 말처럼 벌어도 벌어도 배가 고픈 사람들이다. 

▲ 사진=tvN 화면 캡처

침대가 마음에 안 들어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거나, 수십만 원 빚 때문에 60대 노파가 80대 노인을 죽였다는 등 천인공노할 범죄가 그리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엽기적인 사건들이 횡행하는 요즘이다. 가치관의 변질 탓이다. 범죄에 대한 무감각화를 논하기 전에 모든 가치관이 돈으로 귀결된 탓이다.

오래전 아주 가난했던 시절에도 손님이 찾아오면 찬밥이라도 차려주고 심지어 거지도 외면하지 않았던 게 우리네 정서다. 오죽하면 ‘콩 한 톨도 나눠먹는다’고 했을까? 그러나 해방 이후 지금까지-일부 기간 제외-친일파가 정치와 경제의 헤게모니를 잡아온 결과가 이렇다.

박정희는 ‘한강의 기적’이니 뭐니 해가며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조작하면서 국민들에게 ‘그래도 먹고살 게 해줬다’는 세뇌공작을 성공시켰다. 그래도 막노동자 등 일부를 제외하면 ‘회사원’은 전부 정규직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1995년 김영삼 정부가 하청법을 시행함으로써 비정규직을 양산해냈다.

이전 정권들이 야기한 경제난으로 인해 외환위기를 맞은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돈을 빌리면서 우리나라는 금융, 부동산, 주식 시장을 개방함과 동시에 해고가 자유로워지고,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등 노동조건이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글로벌 자본이 사회 곳곳에 파고듦에 따라 당장 외환위기는 벗어났지만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됨으로써 노동권은 무장 해제되고 정부와 기관은 기업의 편에 서게 됐다. 특히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는 대기업 육성이란 어이없는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을 앞세워 막대한 국가적 지원을 쏟아부으며 노동자를 외면했다.

▲ 사진=tvN 화면 캡처.

이로 인해 한동안 사라졌던 ‘빨갱이’란 단어가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노동운동자들은 전부 간첩이 됐다. 물론 여기엔 일부 거대한 권력 구조를 이룬 노동조합이 의무를 상실한 채 소수의 이권을 목적으로 한 계파 다툼을 일으킨 것과 이런 구조를 언론이 외면하거나 강자의 편에 선 이유도 크다.

회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할 일은 막노동 아니면 자영업이다. 하지만 창업자 3분의 2가 1~2년 내 폐업하는 구조다. 서민들은 삶이 어려워 지갑을 안 열고, 대기업의 '갑질'은 날로 심해지니 맞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다. 기업은 수익을 늘려 주주의 배를 불려야 하니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다. 노동자는 취업이 힘드니 허리띠를 졸라매며 감내한다.

욕망을 없애라는 가르침은 불교철학은 물론 유교철학의 핵심이다. 석가는 욕망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였다. 우리의 현실이 바로 그렇다. ‘누구는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배기량 얼마짜리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데 나는?’이라는 타인과의 비교가 불건전한 욕망을 키운다.

하이데거는 타자와의 관계를 초월해 아예 자체적-탈자적-지평적으로 개시된 세계-속에-있음의 터있음의 실존론적 존재론을 주창했다. 간단하게 로고스(분별, 이성, 정의, 논증)다. 성리학을 완성한 주희의 ‘본연지성엔 하늘의 이치가, 기질지성엔 사람의 욕심이 각각 대응한다’는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윤식당2’는 꽤 사이즈가 있는 예능임에도 그 상업적 틀 안에 ‘오지 기행’ 같은 다큐멘터리 예능이 가장 흔하게 써먹는 ‘버리는 풍요’의 철학을 매우 영리하게 잘 써먹었다. ‘돈이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행복’이라는 가라치코 소도시 시민의 메시지는 그 어떤 저명한 철학자의 가르침보다 쉽고 깊게 와닿는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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