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여자들에게 실망한 나머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가 없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조각해서 함께 지냈다. 그는 조각상에 옷을 입히고 어루만지면서 대화를 하는 등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며 정성을 다했다. 그 정성에 감탄한 신 아프로디테가 조각상을 사람으로 환생시켜 주었다. 피그말리온은 마침내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얻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용어는 특히 교육 현장에서 자주 쓰입니다. ​비록 지금은 실망스러워 보이는 학생이라도 포기하거나 부정적인 자극을 주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격려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보여줄 거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긍정적이고 실천 가능한 미래의 목표에 대한 믿음은 지금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종종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분명히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달콤하게만 보이는 ‘피그말리온 효과’에도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틀림없이 이루어질 줄 알고 쏟았던 노력들이 기대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 큰 좌절과 분노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피그말리온이 그 부인과 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보십시오. 과연 피그말리온은 인간이 된 그 부인에게 실망할 일이 없었을까요? 아니면 그 여인이 피그말리온에게 아무 불만이 없었을까요? 어쩌면 피그말리온이 새 조각상을 만들지는 않았을까요?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내가 기대한대로’ 해주지 않는 배우자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기대들 중에는 ‘결혼 후 첫 생일이니까 뭔가 신나는 이벤트라도 준비하지 않았을까?’ 또는 ‘내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 거니까 오늘은 일찍 와서 집안일도 하고 애들도 챙기겠지’, 그리고 ‘내가 이 정도 해주었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불만이 없겠지’와 같은 공상 같은 기대들 또는 보상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기대들은 좀처럼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대단한 걸 기대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이 사람은 나를 위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아요!”와 같은 불만을 터뜨리곤 합니다. 마치 ‘나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종의 레퍼토리가 있듯이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러니까 나처럼 아예 포기하고 살라니까!”라고 마치 달관이라도 한 듯이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포기를 했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터뜨리는 것을 늦추고 있을 뿐, 속으로 끓어오르는 것까지 막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 우리는 기대를 하고 실망을 얻으면서도 또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포기했다” 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매번 실망하면서도 어느 새 또 다시 기대하게 되고 또 화를 내게 되는 것은, 자신이 ‘사랑 받는 사람’이고 싶다는, 즉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본능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걸었던 크고 작은 기대가 채워지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과 지금뿐 아니라 미래에도 행복하게 살 것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대인관계에서라면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어느 정도 비슷하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부나 가족처럼 중요한 관계에서는 (주고 받은 양이 아니라)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단순히 실망한 정도가 아니라) 참기 어려울 정도로 화가 나곤 합니다. 나중에 곰곰이 따지고 보면 기대했던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왜 그럴까요?

그것은 단순히 자신이 바란 것을 얻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내가 그 정도도 되지 못하나? 처럼) 자신이 ‘그만큼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라는 좌절감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대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말이고, 그것을 바꾸어 말하면, 자신에게는 그 상대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반대로 상대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말은,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 역시 상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는 선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상대의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또 자신의 기대를 채워주려고 애쓰는 상대의 태도에서 부부관계의 장래 희망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어쩌면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들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토록 크게 좌절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상대가 자신과 함께 살아가야 할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번번이 실망을 경험하였더라도 (마치 강박증처럼) 또 다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심리적 현상은 이렇게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대단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기대한 것을 상대가 이루어주지 않으면, 마치 상대가 잘못한 것처럼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에 덧붙여 그런 상대와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대단히 불행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심리적 함정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말 어떤 의미에서는 부부 사이에 기대를 버리는 것이 행복한 결혼을 위한 지혜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랑하여 결혼한 사람과의 생활이 어떤 모습이기를 꿈꾸거나 그 상대가 자신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 잘못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심리임은 위에서도 말했습니다. 또 그런 기대를 채워주고 거기에 감사하는 과정을 통하여 두 사람만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그 이루어지는 것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믿으면, 애초에 꿈꾸었던 대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있었건 사랑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나의 기대와 다른, 그 사람 자신의 기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나와는 다른 사람, 즉 다른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바라는 것이 아주 간단히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채워지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말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