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올해 한국 영화계의 위너는 나문희가 아닐까? 데뷔 56년째를 맞아 출연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흥행의 맛을 본 데 이어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문희가 ‘2017 여성영화인축제’가 지난 7일 발표한 수상자 명단에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녀와 함께 부각되는 인물은 연기상 부문의 엄지원이다. 그녀에게 이 상을 받게 한 ‘미씽: 사라진 여자’(이언희 감독)는 상대적으로 올해 각종 영화 축제에서 다소 소외된 작품이지만 울림만큼은 매우 컸다. 매 영화제마다 엄지원과 공효진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가 문제작으로 평가받는 게 증거.

지난해 11월 30일 개봉돼 올 초까지 115만여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이 영화는 어떤 작품일까? 드라마 작가 지선(엄지원)은 의사인 남편과 헤어진 뒤 이제 막 이유식에 들어간 어린 딸 다은을 키우며 사는 ‘워킹맘’인데 일이 바빠 보모로 중국인 한매(공효진)를 고용한다.

▲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이미지

한국말은 서툴지만 얌전하고 성실한 데다 다은에 대한 애정까지 각별한 한매에게 마음을 놓은 지선은 일에 열중하지만 어느 날 한매가 다은과 함께 사라지고 연락을 끊자 패닉 상태에 빠진다. 남편과 양육권 소송 중이기에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는 지선은 혼자 한매를 찾아 나서고, 남편 측의 신고로 지선은 소송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심을 받는다.

지선은 아파트 앞에서 서성대던 건달 현익(박해준)을 통해 한매의 모든 말이 거짓이었음을 알고 그녀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한매는 시골의 장애 노총각 석호와 매매혼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이웃 김 이장의 증언에 따르면 외아들에 대한 애정이 도가 지나친 석호의 엄마와 석호는 한마디로 사람이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한매가 도망갈까 봐 한국말을 못 배우게 했고, 거의 성의 노리개와 아들 낳는 출산기계의 기능으로만 한매를 대했다. 한매가 딸 재인을 낳자 학대와 멸시와 폭행이 더 심해졌고, 심지어 재인이 중병을 앓음에도 병원 치료조차 안 해줬다.

▲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이미지

낯선 땅에서 비인간적인 대우에 괴롭고 외롭던 한매에게 재인은 한 줄기 희망이었고, 삶의 이유였다. 재인을 데리고 가출한 그녀는 이주여성인 자신은 보호자가 될 수 없고, 석호만 가능하기에 할 수 없이 현익을 통해 성매매와 장기밀매를 하고 받은 돈을 석호에게 바침으로써 재인의 입원치료에 필요한 그의 서명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비가 밀리자 병원 측은 가차 없이 재인을 내쫓고 결국 재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왜 하필 다은일까? 그 병원은 바로 다은의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었다. 급한 병을 앓는 다은을 안고 달려온 지선이 전 남편에게 애원하자 그는 재인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다은을 입원시킨 것.

영화는 여성으로서, 또 이주여성으로서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피가 거꾸로 흐를 만큼의 충격적이지만 현실적인 얘기를 그려낸다. 지선과 한매는 매우 조용하고,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었다. 사람이니까 생존의 본능을 지녔고, 엄마니까 그 모든 건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과 직결된다.

▲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이미지

시어머니의 학대와 남편의 폭행에 심신이 멍든 한매는 재인에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로 만들어줄게”라고 약속한다. 그렇게 해주기 위해 그녀는 성을 팔고 장기를 판다. 경찰은 현익을 거칠게 밀어붙이지만 지선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다은이 있는 곳만 가르쳐주면 뭐든지 다 하겠다”라며.

그러나 아버지와 할머니는 다르다. 어느 부모나 조부모가 아이에 대한 애정이 덜할까 싶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방식이 문제다. 다은의 할머니는 아들과 손녀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그렇다면 손녀의 어머니인 지선도 존중하는 게 당연할 텐데 아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만 취급한다.

재인의 할머니는 장애가 있는 외아들에 대한 애정이 비뚤어져도 극하게 비뚤어졌다. 가난하고 외모도 볼품없는 중늙은이 석호와 연애나 결혼을 할 한국여성은 흔치 않다. 그래서 이주여성을 선택했는데 그 저의가 아들의 성욕해소와 자신의 남아선호에 대한 집착뿐이었다.

▲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이미지

이 모자에게 여자, 그것도 외국여자에 대한 인권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오히려 차이나타운에서 성매매와 장기매매의 브로커를 하거나 폭행은 물론 살인까지 일삼는 현익이 인간적이라는 아이러니로 한국 남성과 그 부모에 침을 뱉는다. 이영학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성매매를 시키기 위해 만난 한매가 딱한 처지인 걸 알게 된 그는 그녀에게서 연민을 느끼고, 그게 사랑으로 발전한다.

세계 GDP(국내 총생산) 순위 11위, GNP(국민 총생산) 순위 9위에 한류열풍으로 경제-문화적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 그리고 수많은 외국여성이 판타지로 꿈꾸는 그 나라의 남성들. 과연 그들의 여성관과 성적 도덕관념이 그런 수준에 맞기는 한 걸까? 이 영화는 부정적으로 본다.

그런 무지한 성에 대한 개념과 낙후된 여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남녀관계에 대한 비이성적 우월감과 남아선호사상 등은 이주여성의 인격과 지위를 한국의 남편에게 귀속시키는 시대착오적 법을 낳았다. 굳이 유엔의 한국의 매매혼에 대한 재인식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중국 베트남 필리핀 베트남 등지의 여성을 어떤 존재로 의식하는지는 참으로 부끄러운 상황이다.

▲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이미지

엄지원과 공효진의 연기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불꽃이 튀기에 선뜻 어느 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는 건 무리다. 여성영화인축제가 엄지원을 선택한 건 지선이 한국인이고, 한매가 중국인이어서일까? 이전까지 ‘로코퀸’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공효진의 버림받은 중국인 연기는 명불허전임이 분명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할 때 지선이 손을 잡지만 그 손끝을 뿌리치는 한매의 눈매는 여성인권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여성의 자포자기의 심리상태를 집약시켜놓은 듯했다. 미스터리의 탈을 쓴 여성인권의 기본을 애원하는 애달픈 심리극이다. “다은이 아냐, 재인이야”라는 한매의 마지막 대사는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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