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변유정의 독자적(讀者的) 시선] 체코는 배낭여행으로 꼭 가봐야 하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는 낭만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프라하는 아름다운 성과 다리, 아마빛 지붕들과 시계탑의 도시이다. 그런데 상상만으로도 멋진 이곳의 거리에서도 역사의 명암明暗을 목격할 수 있다. 실비 제르맹의 소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그 간극에 돋보기를 제공한다.

책에는 엄청나게 큰 거인이며 심하게 다리를 저는 여자가 프라하에 등장한다. 그녀의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보다 짧다. 그녀는 공사장 가림막 방수포 같은 천으로 된 승복을 입고 있는데, 옷은 너무 닳아서 그보다 더 닳기 힘들 정도다. 이런 여자가 왜 프라하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책 어디에도 명확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책은 이런 존재에 대한 목격담을 말하는 역할을 하며,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인상과 회고를 제공할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줄거리가 강조되었다기보다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묶어둔 것에 가깝다. 책에서는 12개의 파트가 제시되는데, 파트마다 아름다운 프라하에 대한 묘사와 여자의 행동들로 채워져 있다. 여자가 포착되는 공간은 대략 9군데 정도로 다양하다. 시간을 넘어 수많은 공간을 돌아다니는 거인 여자의 포착은 책의 중요한 소재이다. 각각의 공간에서 거인 여자가 보이는 행동이 그녀의 정체성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여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초월적 존재인 동시에 프라하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거인 여자가 과거와 관련된 공간을 지나갈 때 학살당한 유대인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와 관련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프라하의 역사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프라하에는 유대인 지구인 요제포프 지구가 있었다. 이곳의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 때 3/4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요제포프 지구는 빈민가로 전락했고, 프라하 시는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지역을 해체했다. 학살당하고 쫓겨난 유대인들의 갈 곳 없는 기억은 바로 이 거인 여자에게 깃들어 있다. 그녀가 불러내는 기억들은 서술자가 프라하의 많은 고인들을 생각하며 ‘내가 행동하기 전에 앞서 있었던’ 이들을 인식하도록 돕는다. 즉, 이 책은 죽은 자를 산 자가 포착하는 바로 그 ‘순간’에 대한 기록인 셈이다.

책은 ‘기억의 자기화’에 대해서도 말한다. 도시가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었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표면적으로 깨닫는 것은 쉬우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현재의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책에 세세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약간의 붕 뜬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서술자 역시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듯한데, 이 때 서술자에게 기억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아버지’가 부각된다. 그는 거인 여자의 옷자락 속에서 포착되는 ‘호두색 눈’이다. 서술자는 아버지 역시도 ‘거인 여자’로 상징되는 역사—눈물과 고통의 집합체—에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표면적이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서서히 자기화한다. 서술자가 점점 세밀하고 지엽적인 공간묘사, 구체적인 인명을 사용하는 것도 ‘자기화 된 프라하’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치는 독자 역시 자신과 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과거의 사람’을 떠올리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로써 독자는 프라하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후반으로 가면서 서술자는 공간을 자기화하는 데까지 이른다. “텍스트를 깨뜨려버리는”, 그로 인해 보편성이 주관성으로 바뀌는 데 일조하는 거인 여자의 존재 때문이다. 여자는 아주 보편적인 공사장마저도 낭만적이게 바꿔놓는데, 그것은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타자들의 기억이 공간에 대한 무관심과 망각으로부터 탈피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타자들에 대한 기억과 생각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요구 않고, 그저 가난하고 겸손한 손님으로 지내는 이상 모든 장소가 다 성스럽다”는 서술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프라하가 이토록 낭만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오래된 역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현재의 사람들 때문이다. 때로 사람들은 어두운 면을 숨기는 대신 최대한 밝은 면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가 보여주는 무언가가 있고, 또 그것을 알아가는 데에서 나오는 깨달음이 있다. 어딘가를 여행할 때 역사가 필요한 이유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을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진정한 낭만,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가 일깨워주는 바를 현재의 우리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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