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중년부부가 상담실을 찾았다. 남편은 부인이 의부증이 있다며 진단과 치료를 부탁했다.

남편은 시장에서 주방용품 도매상을 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저녁이면 거래처나 주변 상가업주들과 식사를 하고 또 술자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사업을 하려면 여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건강도 챙겨야 할 것 같아서 주말 산악회에 가입하여 매주 산에 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좀 적어지는 것은 사실인데, 부인이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긴 거냐?”면서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부인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술자리에 부르기도 하고 산에도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산에 한두 번 따라왔던 부인의 의심이 더 심해지더니 이제는 아예 가지 못하게 막고 나선다는 것이었다. 가끔은 부인이 원하는 대로 집에 있어보기도 하지만, 좋은 일은 없고 대신 부인의 잔소리에 짜증이 나고 결국 부부싸움만 하게 된다고 했다. 부인은 남편 본인이 믿을 수 없게 해놓고 의부증 환자로 몰아간다며 기막혀했다.​

원래는 부부가 함께 시장 일을 시작했었기 때문에, 부인도 남편이 하는 일이나 거래처와 주변 업주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사업이 자리를 잡아서, 남편 말대로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계속 술자리를 마련해야 할 정도는 넘어섰다는 것이다. 남편이 알코올중독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녀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집 밖에서 지나치게 시간을 보내는 그런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부인이 남편의 산악회 모임을 특히 싫어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자신도 산에도 가고 운동도 하고 싶지만,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남편이 좋아하는 거니까’ 하고 따라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본 남편의 모습은 집에서 보았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산악회 여성들과 언제부터 가깝게 지냈는지 자신에게는 하지도 않던 친절을 베풀고 농담도 주고 받으며 재미있어 했다. 그 여성들 역시 남의 남편을 대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못해, 자신이 부인인 것 알고도 조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뭐 하러 따라왔느냐?’는 듯이 못마땅해하는 눈치들이라서 불쾌했다.​

집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당신이 잘 몰라서 그렇지, 다들 재미있는 사람들이다”라고 오히려 상대 여자들의 편을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산악회에서 빠지라고 했으나 남편은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고, 어쩌다 산에 가지 않는 날에는 공연한 짜증을 내고 싸우게 되니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많은 부부들이 이처럼 누가 옳고 그른가의 관점에서 싸우기 때문에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이런 경우 상담가는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여 부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즉 서로 불쾌해할 수 있는 주제로 다투기보다는 부부가 함께 바라는 공동의 목표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필자는 우선 이 부부에게 상대가 하지 말아야 할 것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질문했다.

부인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남편의 모습을 바랬다. 즉 자신의 의견과 느낌을 존중하여 배려를 해준다면 자신도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반대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 역시 부인이 자신을 믿어줄 것을 바랬는데, 나아가서 부인이 자신만 기다리고 바라기 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서로가 재미있었던 것을 이야기 나누게 되기를 원하였다.

상담가가 하는 또 하나의 역할은 문제 해결이나 목표 달성을 한꺼번에 이루려고 하는 대신에, 그들의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성공’들을 찾아내어 그것들이 꾸준히 그리고 조금씩 확장되도록 돕는 것이다.

​필자는 이들 부부에게 상대가 자신을 위해서 노력하는 작은 부분들을 관찰하였다가 보고하도록 과제를 주었다. 다음 시간에 부인은 남편이 늦을 때 미리 전화를 주는 것이 가장 달라진 점이라 했다. ​남편이 술자리로 늦는 경우라도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으니 그다지 걱정이 되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자신이 남편에게 별 일이 없는지 궁금하여 낮 시간에 전화를 할 때가 있는데, 남편이 이전과 달리 밝은 목소리로 받아주는 것도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남편이 그 동안에는 으레 주말이면 산에 갔지만 앞으로는 가족들과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큰 힘이 되었다.

남편은 지금까지는 자신이 늦거나 산에 가는 것을 부인이 참고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는데, 상담 이후에는 집에 혼자 있을 부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부인의 전화가 잔소리나 간섭 같아서 퉁명스럽게 받기도 했고 귀가가 늦어질 때도 전화할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정도를 부인에 대한 배려라고 인정해준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안정을 이루기까지 부인이 애써온 것도 잊고 있었는데, 자신이 부인을 편하게 해주면 부인도 예전의 씩씩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기대하였다.

부부의 많은 문제들은 그 원인이나 차이점 자체보다는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실마리를 찾게 되면, 많은 경우에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문제에서 벗어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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