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스틸컷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무서운 영화’ ‘반지의 제왕’ ‘킬 빌’ 등의 흥행시리즈와 ‘화씨 9/11’ 등 다수의 의미 있는 영화들을 기획한 할리우드의 실력자 하비 웨인스타인(65)의 성추행에 대한 비판이 연일 강하게 이는 가운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배트맨을 맡았던 벤 애플렉(45)도 동일선상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애플렉은 11일(이하 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힐러리 버튼에게 부적절하게 행동했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라고 썼다. 전날 연예정보 사이트 저스트 제러드가 ‘버튼이 트위터에서 팬과 트윗을 하면서 과거에 애플렉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언급했다’고 밝힌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애플렉은 웨인스타인의 추한 행위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한 바 있다.

부적절한 행동은 버튼이 2003년 MTV의 한 쇼프로그램에서 VJ로 활동할 때 이뤄진 것으로 전한다. 그녀는 “나는 (성추행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애플렉)가 나에게 행동한 사건을 잊지 않고 응원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때 나는 어렸다”고 말했다.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등 톱스타들은 앞 다퉈 웨인스타인의 추행을 폭로한 바 있다.

▲ KBS 2TV <마녀의 법정> 포스터

지난 9일 시작된 KBS2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은 한 검찰간부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부터 풀어나가 동성애까지 다루고 있다. 성추행(폭력)은 일반 폭력보다 폭력의 강도를 떠나 더 큰 마음의 상처를 평생토록 남긴다는 데서 그 심각성이 더 크다. 선진국이라는 미국 중에서도 대중이 선망할 만큼 화려한 할리우드의 실력자와 스타도 성추행의 유혹에서 비켜가지 못하는 이유와 그 심리는 뭘까?

펠트로는 이미 오래전 무명시절 캐스팅을 미끼로 한 ‘은밀한 제안’을 받은 바 있다고 폭로했다. 이 저변에 깔린 ‘갑’과 ‘을’의 관계가 성추행의 유혹을 시작한다. 성욕이야 건강과 젊음의 상징일 수 있다. 하지만 동물사회에도 짝짓기에 대한 규칙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인권과 인격을 주장하는 인류의 문화에서의 성관계가 법과 도덕과 합의 등 모든 규칙에서 벗어난다면 그건 용납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 ‘어쩔 수 없이’란 약자적 패배의식 혹은 그런 사회적 구조가 성추행을 덮어주곤 한다. 웨인스타인이나 애플렉이 성추행을 할 수 있었고, 당시 그게 폭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런 ‘갑과 을의 관계’에 근거한다. 가해자인 두 사람은 무명의 신인들을 유력인사에게 소개해줄 수도, 자신들이 직접 캐스팅에 관여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었다.

▲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스틸컷 이미지

당시의 피해자들은 오로지 성공을 하고 싶었고, 그걸 위해선 성추행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막상 당하고 나자 첫 번째는 수치심 때문에, 두 번째는 만약 그걸 고발할 경우 불이익을 당할까 봐 폭로하지 못한 것이었다.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촬영 중 강제로 배역을 빼앗겼다고 주장한 한 여배우가 그 이유를 김 감독의 ‘부적절한 강요’를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공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국정운영의 기본틀을 천명한 바 있다. 그건 지금까지 이 사회가, 국가가 그렇지 못했다는 증거다. 모든 국민에게 사회진출이나 업무분담 등의 기회에 대해 불평등함으로써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그런 모든 학업과 생산활동 등에 대한 진행과정이 불공정했으며, 그로 인한 각종 연줄과 뇌물 등의 횡행이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낳음으로써 국정농단 사태를 비롯한 국론분열 등의 일대혼란이 야기됐다는 것이다.

두 유명인사의 성추행은 문 대통령의 바람직한 국가재건을 위해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의 원칙에서 어긋난 케이스다. 칼자루를 쥔 유력자의 지위를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캐스팅은 곧 입사다. 작품출연의 기회는 곧 경력 쌓기다.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는 과정이다. 이들이 성추행을 한 건 취업을 미끼로 뇌물상납을 강요한 걸 넘어서 강제로 지갑을 뒤져 돈을 강탈한 것보다 더 죄질이 나쁘다.

▲ 영화 <아르고> 스틸컷 이미지

민주주의가 전 세계의 이데올로기로 도입된 이후 줄곧 강조된 기초가 ‘법 앞에서의 모든 인권의 평등’이다. 즉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왕이 왕족과 귀족의 지지를 받아 나라를 지배하던 전제군주국가에서 벗어나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한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신분의 차이가 사라지고 일반 국민 중 누구라도 지도자가 될 수도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자본주의라고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업에 도입된 긍정적 개념이 주식회사다. 기업의 실소유주인 주주는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지만 총회를 통해 대표이사를 선출해 경영을 맡김으로써 이익창출을 노리고, 기업은 그런 건전한 자본을 유치함으로써 주주에게 이익을 나눠주고, 임직원의 풍족한 생계를 보장해준다. 그러나 1대주주가 ‘기회 평등’의 규칙을 깨뜨리고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과정 공정’을 무시하고 편법으로 주식 등의 재산을 상속한다면 결과는 정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를 것이 명약관화다.

▲ 영화 <아르고> 스틸컷 이미지

이런 불법 탈법 변칙 등이 존재함으로써 유력자의 성추행이 은연중에 창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플렉도 아마 철없던 10여 년 전에 자신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 있다는 착각에 빠져 그랬을 것이고, 버튼은 김 감독을 고발한 한국의 여배우 같은 심리 때문에 당시에는 입을 못 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땐 어렸다”고 술회했을 것이다.

동물은 오로지 습관대로 동선을 짜고, 본능대로 삶의 패턴을 꾸려간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하고, 수시로 선택에 고민을 하며, 때론 가치관의 혼돈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물고기가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었으나 낚시꾼에게서 풀려난 물고기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이를 잊고 또 문다.

사람은 누치나 우럭이 아니다. 치매에 걸리지 않은 이상 최소한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놓고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고, 옳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애플렉을 바라보는 시선은 당연히 두 방향으로 나뉜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랐다’는 후안무치하다는 반응과 ‘늦게라도 양심고백을 했으니 그 용기만큼은 높이 사자’는 다소 긍정적인 입장이다.

▲ 영화 <아르고> 스틸컷 이미지

버튼에 대한 추행 뒤, 아니 애초부터 그런 유혹을 느꼈을 때부터 그게 옳지 못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 후 단 한 번도 성추행이 없었다면 그는 단 한 번의 실수가 내내 괴로웠고, 또 그게 알려질까 두려웠을 것이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그렇지 못하다’는 우리네 속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놓고 ‘나 성추행 했소’라고 떠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는 자살행위고, 더 나아가 버튼을 두 번 성추행하는 악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작 버튼을 만나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고, 뒤늦게 SNS를 통해 사과한 게 다소 의심스럽다.

좋게 해석하자면 아마 그래서 고민하다가 버튼의 폭로가 있자마자 마음속의 묵은 짐을 털어내기 위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공개적으로 사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웨인스타인을 비난한 심리는 지극히 정의로운 상식에 근거하지만 그럼에도 속으로 괴롭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만에 하나,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라면 그는 무모한 'Daredevil'일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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