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21세기 걸그룹의 대명사인 소녀시대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티파니 서현 수영이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남으로써 태연 윤아 유리 써니 효연의 5인조로 재편됐다. 2007년 9인조로 데뷔해 2014년 9월 제시카가 떠나면서 8인조가 될 때만 해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번엔 상당한 변화다.

SM은 일단 확고한 5인조라는 편성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팬들의 반응을 봐서, 떠난 3명이 뜻을 같이한다는 전제하에 프로젝트 차원의 8인조 활동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 그러나 재계약을 포기한 만큼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그림이다. 5인조는 물론 그 안에서의 작은 유닛은 당연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3명의 독립과 5인조 체제는 뭘 의미할까?

서현과 수영은 MBC 주말드라마 ‘도둑놈 도둑님’과 ‘밥상 차리는 남자’에 각각 출연 중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고 예전부터 할리우드 진출의 꿈을 키워왔던 티파니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이들이 재계약을 포기한 건 더 이상 소녀시대에 머물지 않고 다른 길을 걷겠다는 의미다. 즉 세 명 모두 가수보단 배우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은 소녀시대라는 브랜드일 것이다. 5명이 재계약을 한 만큼 5인조 소녀시대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아이돌그룹의 명가인 SM인 만큼 5명의 각자의 활동과 상관없이 당분간 신곡을 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소녀시대라는 브랜드 역시 멤버의 것이라기보다는 SM의 소유다.

소녀시대는 뚜렷한 개별 활동으로 팀 시너지를 더욱 확대한 걸그룹이다. 윤아와 유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배우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태연과 효연은 솔로활동을 확장할 것이다. 태연은 태티서로 성공했던 만큼 효연과의 유닛 혹은 다른 멤버들과의 그런 이합집산도 가능하다.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낸 써니 역시 넓은 스펙트럼을 예측할 수 있다.

많은 팬들이 소녀시대의 재편에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모든 그룹은 솔로에 비해 그 유통기한이 길지 못한 게 사실이다. 멤버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제각각인 데다 세월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개념과 이념이 바뀌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도 성공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 목적을 위해 현재의 불만을 참고 견뎌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방향을 바꾸기 마련이다. 데뷔 때는 오로지 성공이 목적이었지만 성공을 이루고 나면 인생의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건 멤버들 간의 우정이나 뒤에서 도와준 매니저 등의 소속사 임직원 및 소속사에 대한 의리와는 다른 차원의 방향전환이다. 제시카부터 이번의 3명까지 애초에 그녀들의 목적은 소녀시대가 아니라 연예인으로서의 성공, 혹은 배우나 솔로로서의 자리매김 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소녀시대는 10년 전에야 그냥 그 또래의 아이돌그룹이 그렇듯 예쁘며 깜찍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오래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이름값에 대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게 됐을 것이다. 이젠 귀여울 수 없고, 그래서 성숙한 매력을 뿜어내야 하며, 음악적으로 선배 노릇을 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을 내놔야 하는 것이다.

서태지는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대중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시나위를 떠나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서태지와아이들이란 댄스그룹을 결성하고 힙합을 한다고 했을 때 수많은 록계의 선배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서태지가 그걸 감내했던 건 성공을 향한 욕망 때문이었다.

이 팀의 데뷔곡은 ‘난 알아요’. 형식은 힙합이지만 멜로디는 다분히 가요적 성향이 짙다. 어쨌든 서태지는 성공했고, 그래서 보란 듯이 이후의 앨범에 각종 록의 장르를 녹여내면서 본래의 음악적 방향을 찾아가더니 어느 날 갑자기 팀 해체를 선언했다. 그 속내야 그만 알겠지만 아무래도 서태지와아이들이란 팀으로선 그의 음악적 취향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힘들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그가 은퇴를 번복하고 솔로 가수로 컴백한 이후 발표한 모든 음악이 록 일변도였던 게 그 증거다. 양현석과 이주노는 서태지와아이들이란 힙합댄스그룹엔 적격이었지만 서태지라는 록밴드와는 맞지 않았던 것.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서태지였던 것이다.

대중음악사를 보면 오리지널멤버가 해체 때까지 유지된 그룹은 극히 드물다. 저 유명한 영국 하드록의 전설 레드 제플린은 드러머 존 보냄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존 없는 제플린은 없다”며 곧바로 그룹을 해체했다. 하지만 이런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한 영국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을 뛰쳐나온 후 결성한 자신의 밴드 레인보우의 보컬리스트를 비롯한 숱한 멤버들을 수시로 갈아치우기로 악명이 높았다.

딥 퍼플을 비롯해 내한공연을 가진 전설적인 밴드들 중 오리지널 멤버였던 팀은 거의 없었다. 레드 제플린은 드물게 4명의 멤버 모두가 팀에서 동등한 존재감을 갖고 균형을 맞추고 있었지만 사실상 모든 밴드(직접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그룹)는 일부가 팀을 이끈다. 시나위는 신대철, 부활은 김태원, 백두산은 유현상이듯.

작곡능력을 갖춘 케이스가 흔하지 않은 아이돌그룹의 경우 헤게모니는 거의 소속사가 쥐고 있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경력이 있고, 정상급에 올라선 그룹이라면 팀의 정체성은 멤버들이 정하겠지만 결국 그룹의 브랜드는 소속사 소유다.

이번 소녀시대의 재편은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래서 소녀시대란 브랜드가 이름은 그대로 유지하되 숙녀시대라는 성숙한 소녀시대로의 탈바꿈을 의미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윤아(만 27살)를 제외한 4명은 만 28살이다. 이제 소녀시대가 ‘지-지-지-지’라는 무대를 꾸미는 건 시대착오란 얘기다.

물론 이들의 변화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은 클 것이고, 오리지널 구성에 대한 그리움은 더 애틋할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성장은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팬들도 이제 나이를 먹었고, 즐기는 음악의 취향도 바뀌었을 것이다. 태연이 솔로 레퍼토리로 발라드를 선택하는 건 자신은 물론 팬들의 변화에 대한 맞춤방식이다.

5인조가 향후 걸어갈 길의 방향이다. HOT처럼 아예 해체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은가? 만약 멤버들이 40대 중년이 돼도 소녀시대란 브랜드가 계속 유지된다면 팬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그때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현실이니까! 그래서 팝계엔 ‘Oldies but goodies’(오래됐지만 그래서 더 좋다. 즉 구관이 명관)란 말이 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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