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캐비아(caviar)는 일반적으로는 철갑상어의 알(블랙 캐비아)을 지칭하나, 확대해서 연어의 알(레드 캐비아)과 염장한 다른 어종의 알도 캐비아라 한다. 철갑상어의 알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흰연어류와 도치류 등의 알을 오징어의 먹물로 염색하기도 한다. 진한 풍미 때문에 선호되는 캐비아는 세계적 진미로 유통되며, 주 요리에 곁들인 요리나 빵 등에 발라먹는 요리로 이용된다. 세계 3대 진미(푸아그라, 서양송로버섯, 캐비아)로 꼽히는 음식이지만 화장품을 만들기도 한다.

캐비아는 철갑상어의 수정되지 않은 알을 정교한 체로 걸러 조직과 지방을 제거하고 4~6%의 소금을 뿌려 염장 처리한 식품으로 살균한 저렴한 캐비아와 살균하지 않은 프레시 캐비아가 있다. 요즘에는 여러 곳에서 캐비아를 생산하지만, 원래는 아제르바이잔, 이란, 러시아와 구소련 연방(카자흐스탄)이 있는 카스피 해 연안의 질 좋은 야생 철갑상어의 알만 캐비아(진품)로 불렸다. 현재 러시아는 야생 철갑상어의 캐비아 생산은 금하며 이란에서는 질이 떨어지거나 미 성숙 알과 깨진 알을 소금에 절인다. 질이 우수한 캐비아는 말라솔(malassol : 소금을 약간만 친 것)이라고 분류한다. 저온 살균이 효과적 저장 방법인 캐비아는 0~7℃ 정도에서 저장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품질이 급속히 떨어진다. 상급 캐비아는 1kg에 900~ 2,000만 원을 웃돈다. 이제 철갑상어를 양식하면서 스페인과 프랑스, 미국 등에서도 캐비아가 많이 생산된다. 대중 음식을 만들 때는 가격이 저렴한 연어알이나 송어알, 럼프피시알을 종종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시대인 1240년대 처음 기록에 나타난다고 한다. 본격적으로는 지중해 등 유라시아에서 캐비아 산업이 시작되었으며 소금에 절여서 나무상자에서 보관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것은 18세기 러시아로부터 프랑스가 캐비아를 수입하면서 유명해졌다. 이때 미식가들은 캐비아를 ‘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고귀한 음식’,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요리’, ‘요리의 보석’으로 불렀다. 중세 유럽에서는 왕실과 교황청의 정식 요리 메뉴로 지정이 되었고, 18~19세기 러시아에서는 캐비아를 먹는 것이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다. 미국은 18세기 대서양의 철갑상어와 흰 철갑상어의 소비가 증가했는데 당시 술집 등에서는 술안주로 캐비아를 먹었다. 19세기 초에는 러시아의 유럽 수출량보다 미국의 유럽 수출량이 더 많았다. 그러다보니 1915년경 대서양의 철갑상어와 흰 철갑상어가 거의 멸종이 되었다. 현재 캐비아 대부분은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나 오염과 댐의 건설, 남획 등으로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요즘은 다양한 조리법이 발전해서 먹는 방법도 다양하지만, 전통적으로는 블리니(blini)라는 메밀가루에 이스트를 넣어 반죽해 구운 팬케이크와 함께 먹으며 계란을 곁들이기도 한다. 또 얼음 위의 캐비아를 떠서 엄지손가락에 올리고 핥아 먹기도 한다. 이때 상아나 자개, 순금 숟가락을 쓰며 은 숟가락은 맛을 떨어뜨려 사용을 자재한다.

캐비아는 원산지, 알의 크기, 색, 가공처리법(농도, 맛 등)에 따라 가격과 품질의 등급이 결정된다. 등급명은 알을 얻는 철갑상어의 종류에 따른다. 벨루가(Beluga)는 가장 고가의 최상급으로 희소성이 크다. 캐비아 알 중 가장 크고(완두콩 정도) 색은 진주빛의 회색에서 검은색에 가까운 색을 띤다. 희귀한 골든 스터렛(Golden sterlet)은 작은 철갑상어의 황금빛 알로 향미도 특출하고 벨루가처럼 귀해 러시아, 이란, 오스트리아 등의 황제에게 진상했던 음식이었다. 오세트라(Osetra)는 회색, 짙은 청색, 검은색, 흰색, 갈색(브라운) 등 다양한 색을 띠며 알은 중간 크기로 견과류(고소한)의 향미가 강하다. 세브루가(Sevruga)는 알이 가장 작고 초록 빛의 짙은 회색이며 향과 맛이 진한데 4종의 캐비아 중 가장 저렴하다.

세계적인 진귀한 음식 ‘캐비아(caviar)’는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caviar’는 ‘xâye(egg)’에서 파생한 페르시아어 ‘xâvyâr’가 터키어 ‘havyar’로 유입되었다. 이 말이 오트만 터키어를 거쳐서 프랑스어 ‘caviar’가 되며 최종 정착을 했다. 일설에는 페르시아어 ‘khaya(알)’과 ‘dar(낳음)’가 합성된 말이 시대를 거쳐 변형되면서 최종 ‘caviar’로 정착했다고 한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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