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성평등 보이스] 우리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읽고 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이 둘을 안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선녀는 매정하고, 홀로 남은 나무꾼은 불쌍한 느낌이 드는가? 아니면 나무꾼의 범죄행위에 분노를 느끼는가? 이 동화에서 선녀가 목욕 하는 모습을 나무꾼이 함부로 훔쳐보다(관음) 못해, 옷을 훔치는(절도) 것은 범죄행위다. 선녀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 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행위처럼 많은 어린이들에게 잘못 인식되는 것이 문제다. 요즘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도둑촬영이 날로 급증하는 것과 과연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심청전‘은 또 어떤가?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딸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과연 권할 만한 효도인가? 어머니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아들 이야기는 왜 별로 없을까?

▲ 영화 <에버 애프터> 스틸 이미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도 마찬가지. 신데렐라는 새 엄마와 새 언니들의 구박을 받다가 멋진 왕자님을 만나서 고생에서 벗어나고 새 인생을 맞게 된다. 여자의 운명은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준다. 멋진 왕자를 만나서 팔자 고치는 여자 이야기가 과연 명작 동화인가? 이와 대조적으로 <에버 애프터>란 영화는 신데렐라를 의존적이 아닌 독자적인 인물로 그려냈다.

동화도 어쩔 수 없이 시대의 산물이다. 과거에 지어진 동화에는 가부장제 당시의 성 역할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반영돼 있다. 남자는 진취적인 반면, 여자는 의존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예쁘고 날씬해야 하고, 집안일과 아이 돌봄은 여자의 몫이고,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현모양처 되는 게 최고 행복이라는 등등. 왕자와 공주가 자주 등장하거나, 여성이 성적 대상이 되거나….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진 만큼 동화도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양성평등의 시각에서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세계적인 여성학자 바바라 G. 워커는 여성의 시각으로 새로 꾸미거나 창작한 동화 10여 편을 묶어 <흑설공주>라는 책을 펴냈다.

▲ 영화 <백설공주:사라진 아빠를 찾아서> 스틸 이미지

예를 들어 ‘백설공주’를 패러디한 ‘흑설공주’에서 계모인 왕비는 백설 공주를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오히려 위기에 빠진 공주를 돕는다. 왕의 사위를 꿈꾸는 신하 헌터경이 공주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왕비의 시기심을 부추기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못난이와 야수’에서는 여 주인공이 곱사등이에 다리가 구부러지고 뚱뚱하고 곰보이며 머릿결도 뻣뻣한 모습이지만 마음씨만은 곱다. 야수도 흉측한 외모가 아름다운 왕자로 변하지 않는다. ‘미녀와 야수’와 달리 두 사람은 서로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

‘개구리 공주’에서는 개구리가 왕자와 입맞춤하면서 공주로 변해 왕자와 결혼하나 행복하게 잘 살지 않는다. 파리를 잡아먹고 사람이 아닌 자녀를 낳는 등 천성을 드러낸 끝에 개구리로 돌아간다. 개구리가 공주에게 도움을 주고 왕자로 되돌아와 공주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더라는 ‘개구리 왕자’와는 딴판이다.

▲ 영화 <신데렐라> 스틸 이미지

저자는 “아름다운 여자를 제외하고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동화를 읽으며 자라는 여자 아이들은 외모가 재산이며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은연중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는 재기발랄하고 긍정적이며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멋진 여성들이 나온다.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밝힌다.

우리 사회에도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창작 동화 뿐 아니라 기존 동화 개작도 많이 나와야 한다. 동화를 읽어줄 때도 가려서 읽어줘야 한다. 그래서 남녀 모두 어릴 때부터 양성평등이 생활화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