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이현지의 종착역 없는 여행] ‘엊그제 저멋더니 하마 어이 다 늘거니. 少年行樂(소년행락) 생각하니일러도 속절업다. 늘거야 서른 말삼 하자니 목이 멘다…’ 허난설헌의 「규원가」의 첫 부분이다. 이번 여행은 그녀의 시와 더불어 고즈넉한 소나무의 향취와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강릉으로 떠났다.

신사임당의 고상한 정신이 남아있는 곳, 오죽헌

오죽헌은 우리나라 현모양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신사임당과 그녀의 아들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했다. 역시 ‘강릉’하면 오죽헌을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에 맞게 집의 뒤편에는 대나무가 가득하다. 혼자 조용히 집 뒤편을 걸을 때 대나무 사이사이로 마침 바람이 불어준다면 예스러운 분위기에 기분이 한층 더 여유로워 진다. 바람과 대나무가 스치는 시원한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보기를.

▲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문성사

사실 오죽헌에서 대나무보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이다. 문성사 옆에 든든히 자리해 있는 소나무는 율곡 이이의 곧은 덕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소나무가 바로 ‘율곡송(栗谷松)’이다.

경포 호에서부터 허난설헌 생가까지, 걸으며 느끼는 강릉

햇살에 비쳐 반짝거리는 경포 호수의 풍경에 눈이 시릴 정도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손 잡고 호수를 따라 걷는 연인들에게 경포 호수는 시원한 푸른색만으로도 이미 산책코스에 제격이었다. 호수가 원래 푸른 것인지, 너무나도 맑은 하늘이 호수에 비쳐 파랗게 보이는 것인지. 눈과 마음이 절로 시원해지는 곳이다.

그러나 이대로 호수만 구경하고 간다면 분명 어딘가 아쉬움이 따를 것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허난설헌 생가가 있으니 꼭 들려보길 바란다. 방금 전까지 하늘색을 실컷 봤다면 허난설헌 생가로 가는 길에는 높게 자란 소나무들이 당당히 과시하는 진한 녹색을 눈에 마음껏 담을 수 있다.

높고 곧게 뻗은 소나무들을 구경하느라 고개를 들고 걷다 무심코 앞을 보면, 귀여운 아이들 모형을 볼 수 있다. 동작이 너무나도 섬세해서 멀리서 볼 땐 정말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넓게 펼쳐진 소나무들의 행렬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솔향 강릉’이라는 말이 정말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곳이다. 걸어야 하는 길이 생각보다 길었지만 가는 곳마다 소나무가 옆자리를 채워주니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그저 오랜 시간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나무들의 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걸으면 된다.

긴 숲을 지나오면 어느새 허난설헌의 생가가 보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난설헌’은 사실 그녀의 호(號)이고, 본명은 허초희이다. 그녀는 뛰어난 여류시인으로, 한편으로는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보낸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허난설헌의 외로운 생애를 떠올려 보며 집 주변을 걸으면, 지금은 주인이 없는 이 집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허난설헌의 동생인 허균의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허균은 그의 누이와 더불어 강릉을 대표하는 문인이라 할 수 있다. 허균은 여러 시 작품을 통해 강릉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고 한다. 사실 경포 호 가까이 위치한 이곳의 풍경을 보며 시가 탄생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강릉은 분명 훌륭한 시가 탄생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적 재능과 강릉의 아름다운 절경이 금상첨화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허난설헌의 생가까지 돌아보고 이제 다리가 좀 아파온다면 경포대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가서 커피 한 잔의 휴식을 취하면 된다. 익숙한 커피 향과 시원한 바다향이 적절히 섞여 더욱 꿀맛 같은 휴식을 선사할 것이다.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는 여름에 아직도 축 늘어져만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오감을 만족시켜줄 강릉으로 떠나보는 것을 권한다. 푸른 바다의 시원한 파도 소리와 소나무의 향기가 아직 웅크리고 있는 당신의 감각을 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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