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화탁지의 음양오행 성격론] 살다보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왜?”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모든 인간의 계획과 우주의 계획이 같은 방향일 순 없다. 방향이 계속 엇갈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왜라는 물음은 쏟아질 것이고 그때부터 회의주의나 비관주의에 빠지게 된다. 명리를 처음 공부할 때 드는 절망감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왜 그리 나쁜 것 투성인지, 더 깊게 알아가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심하게 저주받은’ 또는 ‘심하게 재수좋은’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기쁨과 슬픔이 3:7로 섞인 잡곡밥과 같다. 기쁨은 기쁨대로 환호하고 슬픔은 슬픔대로 곱씹으면서 깊은 맛을 음미하는 자에게 우주는 자신을 열어 보이며 소통을 시도하지만, 슬픔을 골라내고 기쁨만을 취하려는 자들에게 인생은 늘 가시밭길이다.

우주와의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우주와 발을 맞춰 걷는 것이다. 사람들은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지만 우주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왜 자신의 속도에 발을 맞추어주지 않느냐며 신세타령을 한다. 우주는 계속해서 신호를 보낸다. 제발 나와 속도를 맞추면서 가자고.

혹은 우주가 본인에게 발을 맞춰주었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그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의기양양해한다. 운 좋게 우주의 속도와 자신의 속도가 맞아 목적지에 빨리 도착했을 뿐, 거대한 우주 속에서 육체의 한계에 갇힌 영혼이 혼자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면을 통해 무의식을 들여다보거나 혹은 수호천사가 하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방송이 있다. 최면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신뢰도가 있느냐 하는 측면보다, 이런 상담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긍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시청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필자가 현재 명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만이 인생의 답이 될 수 없으며 설령 아무리 많은 공부를 했다하더라도 인생에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답을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 중 수호천사가 주는 메시지에서 명리학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계절의 흐름을 타면서 가야지 왜 혼자 그렇게 힘을 주고 있냐면서 힘을 빼라는 말을 계속했다.

그래 맞다. 우리는 겨울에 씨앗을 심을 수 없고 봄에 추수를 할 수 없다. 계절의 변화는 우주의 기운의 변화이고 결국 우리는 우주의 속도와 발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 입증된 셈이다. 각자의 사람에겐 우주와 맞는 개인적 속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하여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서양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 말로 유명하다. 필자는 명리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말을 이해했다.

스피노자에는 신이란 존재는 곧 자연이다. 그는 ‘인간의 의지 역시 자연현상의 일부’라고 했고 ‘인간은 정념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닌 유별난 존재일수 없다’라고 했다. ‘자연이 곧 신이다’라는 필자의 생각과 같아서인지 졸업한지 25년 만에 그의 책을 다시 펼쳤다. 명리학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저 말의 의미를 몰랐을 것이고 덩달아 인생의 의미도 몰랐을 것이다.

계절의 오고 감을 받아들이 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운명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여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 오경아 비엘티 아케아 대표

[오경아 대표]
건국대 철학과 졸업
전 수능영어강사(번역가)
현 비엘티 아케아 대표
현 교환일기 대표
현 세렌 사주명리 연구소 학술부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