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시즌 오브 더 위치: 마녀 호송단’(도미닉 세나 감독, 2010)은 십자군이 활동하던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영화이다. 1344년. 베이맨(니컬러스 케이지)과 펠슨(론 펄먼)은 죄를 사면 받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십자군으로 활약하며 명성을 떨쳤지만 교회의 횡포에 환멸을 느끼고 탈영한다.

떠돌던 중 말을 바꾸기 위해 한 마을에 들렀다 정체가 탄로나 잡힌 그들을 신부 데벨자크가 빼돌린다. 그곳은 3년째 역병이 창궐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상황. 교회는 마녀인 소녀 애나의 짓이라 판단한다. 고대 서적 ‘솔로몬의 열쇠’가 있는 세베라크 수도원에 그녀를 데려가 처형, 저주를 없애려 한다.

그 호송 임무를 십자군 전투에서 맹활약한 두 기사와 데벨자크에게 맡기려 하는 것. 그들에 더해 기사 에크하르트, 길 안내자 하가마르, 기사 지망생 카이까지 호송단이 꾸려진다. 베이맨은 애나가 마녀라는 교회의 판단을 유보하고,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한다. 애나 역시 그의 배려를 고맙게 여긴다.

그런데 수도원까지 가는 험난한 여정에서 애나에게 부정적이었던 하가마르가 늑대 무리에게 물려 죽고, 에크하르트는 역병으로 죽은 딸의 환청을 듣고 이상 행동을 보이다가 놀라서 실수한 카이의 칼에 죽는다. 애나를 죽이려는 베이맨과 수도원에서 마녀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데벨자크가 갈등한다.

게다가 카이는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천신만고 끝에 수도원에 도착하지만 모든 수도사들이 역병으로 전멸한 상태인데. 일단 킬링 타임용으로서 그럭저럭 볼 만한 판타지물이다. 게다가 중세 타락한 교회의 권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교훈도 담겨 있어 가벼운 오락물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아주 영악한 포교 영화이다. 일단 십자군 전쟁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자는 표제 뒤에 숨은, 유럽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약탈과 살육이라는 내막을 고발한다. 베이맨과 펠슨이 십자군의 여자와 아이 살상을 보고 탈영하는 시퀀스이다.

그렇게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났다는 자아비판으로써 비기독교인은 물론 보편적인 기독교인의 공감을 자아낸다.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 이래 유럽 전체에 전파되었지만 일부 타락한 지도층이 권력화하면서 많은 진보 지식인들의 반발을 사 종교 개혁을 초래했다.

15세기 이후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 개혁으로 분열이 일어나자 지도층은 그 위기에서 탈출하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마녀사냥이라는 히든카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사회가 파국에 이를 때 마녀재판이라는 일종의 경고 혹은 비상구로 여론을 조장하길 마다할 리 없었다.

그런 내부적 비판으로 일단 종교계의 기득권 세력에 반감을 가진 ‘개혁파’와 비종교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트로에서 마녀로 지목된 할머니가 신부에게 “넌 지옥에 떨어질 거야.”라고 저주를 퍼붓는 식. “교회는 전쟁, 기근, 역병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지옥에 보냈다.”라는 대사까지.

그리고 뻔한 클리셰이긴 하지만 애나라는 빌런에게 반전을 배치해 호러 판타지의 재미를 덧칠한다. 이 영화는 ‘마녀는 없었다.’라고 확신한다. 그 대신 ‘악마는 있다.’라고 명토 박는다. 그건 중세 종교계의 마녀사냥이 분명히 잘못임을 지적하는 한편 ‘하느님과 예수는 있다.’라는 종교적 믿음이다.

악마가 있다면 천사도 있을 것이고, 천사가 있다면 그들의 유일한 지도자인 하느님의 존재가 자명해진다. 그래서 하느님이 세상에 보낸 독생자인 예수의 존재도 당연해진다. 전형적인 연역법의 포교 영화이다. 십자군 전쟁은 11~13세기에 걸쳐 발생했다. 마녀사냥은 15세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은 14세기이다.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을 플롯 안에 모두 넣으려다 발생한 억지인 듯하다. 무턱대고 선교를 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재미만 추구하는 이차원적인 작품은 아니다. 악마는 자기 의지에 의해 인간을 죽이려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잘못에 의해 세상에 온다는 메시지이다.

프랑스에 ‘악마는 일일이 사람을 찾아다니기 바쁠 때 대리로 술을 보낸다.’라는 격언이 있다. 역병이 그 술의 역할을 한다. 당시에 역병이 창궐한 건 유럽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동서양을 도탄에 빠지게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전쟁은 양대 종교 진영의 권력자의 이권 다툼 양상으로 흘렀다.

대다수의 교인들은 전쟁보다는 공유 혹은 최소한 분유를 원했지 목숨을 내건 전쟁을 통한 독점까지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을 섬기는 이유는 현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자연스럽게 죽은 뒤, 내세에서 좋은 곳에서 편하게 쉬기 위해서가 아닐까? 마녀사냥 역시 악마를 부른 빌미였다는 메시지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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