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는? 비주얼이다. 그림이 볼 만하거나 아름다워야 한다. 오락용이다. 재미있거나 최소한 웃음을 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줘야 한다. 예술이다.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거나 “나 그 영화 봤어. 좋아해.”라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킬링 타임용이라지만 기억에 남아야 한다.

가장 프랑스인다운 영화를 만드는 미국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결코 쉽지 않음에도 꽤 많은 관객들이 열광하는 이유이다. 그런 그가 오는 18일 새 작품 ‘프렌치 디스패치’로 돌아온다. 이 작품은 전술한 그의 모든 특장점이 골고루 녹아든 집대성이다. 그런 관점에서 관람하면 재미있고 눈이 호강하지만 파고들자면 그의 작품 중 제일 어렵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가상 도시 블라제에 있는 미국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사무실. 창간인의 아들인 편집장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레이)가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고인의 유언대로 폐간호를 발행하기 위해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편집실에 모여 그들이 작성할 4개의 특종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자전거를 타고 취재 다니는 새저랙(오언 윌슨)은 프랑스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블라제의 이모저모를 늘어놓는다. 현대 미술 평론가 겸 전문 기자 베렌슨(틸다 스윈턴)은 살인죄로 복역 중인 천재 예술가 모세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가 교도관 시몬(레아 세이두)을 모델로 그린 걸작을 소개한다.

저널리즘 원칙을 고수하는 에세이스트 크레멘츠(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가 주도하는 학생 운동을 취재하며 기득권에 대한 청년의 분노와 슬픔을 이야기한다. TV 쇼에 출연하는 라이트(제프리 라이트)는 일류 셰프 네스카피에 경위(스티브 박)의 레시피를 취재하던 중 서장(마티외 아말릭) 아들 납치 사건과 맞닥뜨린다.

앤더슨은 고교 시절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러스트 표지의 시사 주간지 뉴요커의 애독자가 되었고, 이때 받은 영감으로 이 작품을 찍었다고 한다. ‘저널리스트들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라는 감독의 표현처럼 실존했던 기자와 인물, 그리고 기사들에 근거해 캐릭터와 스토리를 구성한 것이다.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이자 미장센의 대가라는 별명답게 이 영화는 그저 눈으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관람료가 아깝지 않은데 음악까지 아름답다. 특히 이토록 연기력이 뛰어나고 유명한 스타들을 한 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만족이 될 듯하다.

작품은 크게 예술가 섹션, 정치 섹션, 맛과 냄새 섹션 등으로 나뉘어 20세기 초의 정치, 사회, 예술, 문화, 생활상에 대한 풍자를 담아내지만 극단의 이념이나 고집스러운 철학을 주장하지는 않고, 관객 각자의 해석의 여지를 열어 놓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올바른 저널리즘에 대한 메시지이다.

기자는 주관을 배제한 채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 사고, 사물, 인물 등을 바라보아야 하고, 팩트에 의거해 기사를 작성하되 감성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소명과 주제 의식만큼은 확고하다. 거의 매 시퀀스마다 코미디와 블랙코미디가 포진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한겨울 연인의 데이트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영화이다.

새저랙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어이없는 사고를 당한다든가, 시몬이 감옥 안에서 로젠탈러와 연애를 하면서도 매우 시니컬하다든가, 크레멘츠가 아들 또래인 제피렐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데 제피렐리가 동지 여학생과 동침한 뒤 둘 다 첫 경험이었다고 고백하자 “어쩐지.”라고 실망하는 식이다.

앤더슨의 전매특허인 4 대 3의 화면 비율은 집중도를 높이는데, 지나친 피로감을 염려했는지 가끔씩 할리우드 비율도 섞는다. 또한 컬러와 흑백을 오가는 그 특유의 색채 테크닉도 지루함을 방지해 준다. 아무래도 다수의 관객들은 델 토로, 세이두, 애드리언 브로디가 이끌어 가는 예술 섹션에 제일 눈이 갈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예술과 광기, 직업윤리, 참된 사랑 등을 질문하고 서로 버무린다. 시몬은 베드로, 열두 제자 중 한 명,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신도 등을 가리킨다. 어쨌든 예수의 최측근이다. 모세는 출애굽기의 그 인물이고, 로젠탈은 칭찬의 긍정적 효과인 로젠탈 효과를 명명한 심리학자이다.

앤더슨은 모세 로젠탈러라는 인물을 통해 광기와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모세는 아무 이유 없이 바텐더 2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잡혀왔다. 단편적으로 봤을 때 그는 사이코 살인마이다. 하지만 그건 사회적 배경과 바텐더들의 다른 행동이 가려진 편린일 따름이다. 그의 살인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토록 뛰어난 천재적 예술가가 단지 이유 없는 광기만으로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감옥 내에서의 그의 납득하기 쉽지 않은 언행으로도 짐작이 가도록 만든다. 미셸 푸코는 르네상스 시대(16세기)에 광인이 병자로 분류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광기가 신성시되었던 것을 지적했다.

물론 그는 그것과 더불어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 이후 이성에 의해 광기가 이단시된 고전주의의 배척 역시 함께 부정하기는 했다. 로젠탈러는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주목받았고, 비교적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상처를 입고 붓을 꺾었다가 시몬 때문에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의 예술성과 천재성을 사회가, 환경이 억압했던 것이다. 맛과 냄새 섹션은 꽤 버라이어티한 재미와 비주얼을 선사한다. 아들을 구하기 위한 서장과 경찰 등의 활약이 재치 넘치는 애니메이션과 결합해 상당한 유머를 구축한다. 앤더슨의 작품은 모두 걸작이지만 이건 특히 마스터피스이다. ‘어느 시대이건 매번 격동의 시대이다. 하지만 삶은 살아질 만한 것이다.’라는 그의 테제는 지속된다. 15살 이상.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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