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전라남도 여수에서 3대째 돼지국밥 식당 동백을 운영하는 순철(박근형)은 곧 팔순이다. 워낙 인심이 사나워 친구가 없는 그의 팔순 잔치에 손님이 안 올 것을 우려한 환갑의 아들 남식은 주민들에게 공짜 술을 대접하며 참석을 부탁하지만 이를 본 순철은 행패만 부릴 따름이다.

손님이 떨어지자 순철은 가족들에게 폐업 의사를 전하고, 남식 부부는 반발한다. 손자 귀태는 음악에만 관심이 있을 뿐 식당 운영에는 무관심하다. 그런데 어느 날 대명그룹 회장 장연실이 10살 손녀 혜지와 함께 동백을 찾는다. 죽은 아버지가 이 국밥 맛을 잊지 못했다며 오히려 고마워한다.

얼마 후 대명 그룹에서 프랜차이즈 산업 제안을 한다. 모든 비용을 대명 측이 대고, 수입은 황송할 만큼 분배하겠다는 조건이다. 식구들은 희망에 부풀어 사업 준비를 한다. 그럴 즈음 연실이 혜지와 함께 또 동백을 찾아와 순철에게 그런 좋은 조건을 내건 배경에 대해 설명하자 순철은 분노하는데.

영화는 오락과 예술의 용도를 논하기 이전에 미디어이다. 그런 맥락에서 ‘동백’(신준영 감독)은 연출력이나 완성도 등을 따지기 이전에 무조건 필요한 영화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진영을 나누고, 혹은 나뉘어 죽일 듯이 싸우는 이 한심한 형국 아래에서 왜 역사를, 왜 제대로 알아야 하는지 이 영화는 피를 토해 웅변한다.

대한 제국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아이로니컬했다. 북측에는 소련군이, 남측에는 미군이 군정을 각각 설립해 지배했다. 미군정은 법질서 유지를 빌미로 일제 잔재 청산이 아닌, 친일 세력과 일제의 각종 제도를 그대로 전면에 내세워 치안과 행정 등을 꾸려 나갔다.

그런 혼란 속에서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일어난다. 미군정, 국군, 경찰 등의 지배 계급이 무장 반란한 남조선로동당 무장대와 충돌했는데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국가 폭력이 남로당은 물론 무고한 국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1948년 5월 4일 여수에서 김지수, 홍순석, 지창수 등 좌익 장교가 포함된 제14연대가 창설된다. 좌익 모병관들이 반이승만 계열, 좌익 수배 사범 등을 적극적으로 모병한 결과 남로당의 세포 조직이 침투한다. 그들은 평소 경찰에 대해 적대 감정을 품고 있었다. 당시 국군은 경찰의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남측의 단독 선거 시행을 둘러싸고 우익과 좌익이 충돌했는데 단독 정부 수립이 확정되자 남로당의 투쟁이 점차 급진화, 폭력화되었고 특히 전라남도 지역에서 반대하는 움직임이 컸다. 그 와중에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이 제14연대를 제주도 반란 진압에 투입하려 하자 반발하면서 여순 사건이 벌어진다.

진압군의 반란군 진압 과정에서 2000~50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여순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국회는 국가보안법을 1948년 12월 1일에 제정하였고, 이는 이승만의 독재 권력 강화에 크게 이바지하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반란을 일으킨 남로당계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을 진압하고자 했던 미군정, 이승만 정권, 그리고 극우 세력인 서북청년단의 폭력 대립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권력욕에 눈이 먼 이승만 정권, 미국과 소련의 제국주의, 그리고 거기에 휩쓸려 분별력 없는 정치적 극단주의에 경도된, 우매한 국민들의 폭력성이 무고한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 국민들은 이 연결된 두 건의 참상을 어떻게 알고, 이해하고 있을까? 단순히 ‘빨갱이’들의 반란 행위라고만 해석하고 있지는 않을까? 도대체 ‘빨갱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공산주의가 어떠한 이념인지 제대로 알고는 있을까?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자들의 주입식 반복 교육에 세뇌되었다는 걸 지각할 능력이나 되는지 이 영화는 묻는다.

어린 순철은 그 여순사건으로 인해 아버지가 무고한 군인 한 명에게 밥을 주고, 그를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것을 목도한다. 순철은 평생을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주홍 글씨를 강제로 이마에 새겨진 채 살아왔다. 그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뭣인지 모른다.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급급할 따름이다.

남식은 전투경찰로 복무하던 중 시위 현장에 투입되어 중상을 입고 의가사로 제대했다. ‘빨갱이’ 아버지와 ‘진압군’ 아들은 그렇게 한 식당에서 국밥을 말아 왔다. 진보주의자보다 보수주의자 혹은 그런 성향의 정치인들이 더 남북통일을 목청껏 외친다. ‘우리의 소원’은 1947년 3월 1일 미·소 군정기에 발표되어 이듬해 정부 수립 때 통일 염원 노래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통일을 외치는 이유는 남과 북이 원래 한민족이라는 한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일을 외치면서도 북측 사람들을 ‘빨갱이’라며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건 표리부동이고 아이러니이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이 재결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서와 화해와 이해라는 게 필요하다.

북측의 이념을 인정하지 않고서 우리네 사상만 강제로 주입하려 한다면 절대로 통일은 이뤄질 수 없다. 무력 충돌만 있을 따름이다. 순철과 남식과 귀태는 그런 상징성이다. 순철은 심한 피해의식에 빠져 무조건적인 복수심만 불태울 따름이다. 남식은 그 피해의식에 더해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귀태는 MZ 세대답게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이해가 안 된다. 그 군인이 증조할아버지를 죽인 게 아니라 서북청년단, 더 나아가 미군정과 이승만이 죽인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긋난 이념적 극단주의 및 권력욕이 범인이다. 순철은 “맛은 만드는 게 아니라 천천히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통일이 그렇다. 교육적, 상식적 측면에서 필독서이다. 2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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