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한의대에 입학하니까 친인척은 물론이고 지인들도 너도나도 내게 손목을 내밀었다. 진맥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우물에 가 숭늉 찾고, 콩밭에서 두부 찾는 격이랄 수 있지만, 한방하면 진맥을 떠올릴 만큼 일반인들에겐 신기하고 궁금한 분야여서 관심을 보인 것이었으리라.

실제로 진맥은 오랜 역사를 가진 진단의 한 방법이다. 한의학에서 환자를 진찰하는 과정을 망문문절(望聞問切, 흔히 사진(四診)이라고도 한다. 망진(望診)은 눈으로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는 단계이고, 문진(聞診)은 언제부터 아팠는지 등을 들어보는 과정이다.

다른 의미의 문진(問診)을 통해 환자나 보호자에게 주요 증상과 발병 동기, 가족력, 생활습관 등을 질문하게 된다. 절진(切診)은 촉진(觸診)이라고도 하는데, 직접 환자의 체표를 만져보고 눌러보는 진맥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의사는 사진(四診)의 정보를 통해 치료법이나 처방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절진(切診)은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이뤄진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더욱 그런데, 가족 중에 누가 열이 나는 것 같다고 하면 이마에 손을 대보는 게 대표적이다. 열이 높다고 느껴지면 그제 서야 체온계를 꺼내 온다는 얘기를 자주 보고 듣게 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모든 한의사들은 진단학(診斷學) 과정을 통해 진맥을 배우게 된다. 손가락 세 개로 손목뼈 근처의 촌·관·척(寸關尺)부위를 눌러 맥상을 알아보는 것이다. 각각의 부위를 얕고, 중간, 깊게 누르는 방법이어서 모두 9개의 맥을 알아볼 수 있다.

맥이라는 게 사람의 심장박동이나 혈액 상태와 관련 있기 때문에 옛날 몸 안쪽을 보고 싶어 하는 한의사들의 간절함을 도와주는 도구였다고 볼 수 있다. 또 수많은 한의사들의 수많은 진맥 행위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진료에 참고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진맥의 기록이 주관적인 감각의 결과인 경우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정 질환을 앓는 환자의 맥을 직접 만져보지 않고서는 진단학에서 소개하는 맥상을 정확하게 전달받기 쉽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특정질환의 맥상이 표준화된다면 진단의 정확성이 높아져 진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침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최근 한의학의 진맥 데이터를 국가 표준데이터로 개발, 관리하겠다고 밝혀 기대감을 갖게 된다. 한의사들이 매년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측정한 나이·성별·질병 등에 따른 맥진 파형과 진단 결과 데이터를 참조표준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진맥 표준데이터가 나오면 한의사 뿐 만 아니라 의사들도 활용했으면 좋겠다. 현대 의학으로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난치·불치병을 진맥 표준데이터로 조기에 진단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이 서양철학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시대여서 진맥도 디지털 데이터가 축적되면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빅데이터 활용과 딥러닝의 효능을 이미 목도했기 때문에 진맥의 표준화에 거는 기대도 크다.

디지털 데이터의 종류와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이제는 기뻐할 일이다. 빅데이터 처리기술이 크게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맥 데이터도 건강과 생명보호의 가치를 올리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