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크리스토퍼 놀란은 상업성과 완성도를 가장 완벽하게 동시에 갖춘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세계 3대 영화제는 그에게 주목하지 않는다. ‘로마’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상업적 성공으로는 놀란에 뒤지지만 작품의 철학적 가치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칠드런 오브 맨’(2006)은 쿠아론의 세계관과 종교관이 응집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2027년. 세계 각지에서는 폭동과 테러가 비일비재해짐으로써 정부가 무너지고 유일하게 군대가 살아남은 영국만 국가가 유지된다. 하지만 정부는 넘쳐 나는 푸지(불법 이민자)들로 골머리를 앓으며 그들을 보호하거나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류가 많은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인지 임신을 할 수 없게 되었기에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 최후의 임신으로 태어난 ‘마지막 아이’인 20살의 유명 스타 남자가 한 팬에게 살해된 후 인류는 더욱더 불안에 떨게 된다. 영국은 가임 테스트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불법으로 간주해 잡아들이고 있다.

아들 딜런을 호흡기 질환 팬데믹으로 잃은 후 아내 줄리엔(줄리안 무어)과 헤어진 지 거의 20년이 된 공무원 테오(클라이브 오웬). 둘은 혁명 그룹에서 만났지만 아들이 죽은 후 테오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잃어버린 채 수동적, 관성적으로 바뀌었다. 줄리엔은 이민자 합법화 운동을 펼치는 조직 피시단의 수장으로 수배 중이다.

그녀는 테오 앞에 나타나 임신한 흑인 소녀 키가 인류의 희망이라며 그녀를 ‘인류 프로젝트’가 펼쳐지고 있는 배 ‘미래호’에 승선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함께 이동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폭도들의 총에 의해 살해된다. 테오는 키, 조산사 미리엄과 함께 피시단의 한 ‘안가’에 숨는다.

루크가 새 수장이 되고 안가로 조직원들이 하나, 둘씩 몰려온다. 루크와 조직원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 테오는 경천동지할 비밀을 알게 된 후 키와 미리엄을 데리고 천신만고 끝에 도망치는 데 성공해 오래된 친구 재스퍼(마이클 케인)의 숲속 집에 숨는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 피시단이 그곳을 덮치는데.

이 영화는 자본주의가 장려한 물질만능주의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짓밟고 군림한 현재를 가까운 미래의 파시즘이 전 국민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로 표현하는 가운데 인류의 희망은 아이라는 언명을 성서를 통해 환유한다. 물론 그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희생은 필수이다.

1919년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창시해 국수주의, 인종주의, 전체주의, 반공주의 등으로 무장해 계획 경제를 통해 일당 독재를 시행한 파시즘은 교묘한 포퓰리즘을 통해 한때 성공했다. 히틀러의 나치즘은 여기에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앞세운 민족주의를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

파시스트들은 모든 인권이 평등한 사회를 거부하므로 국민의 생활을 통제한다. 난민을 돕거나 가임 검사를 기피하는 걸 불법으로 간주하는 것이나, 군인들이 대낮에 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총질을 해대는 것은 그런 파시즘이다. 심지어 정부는 자살 약을 지급해 인구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한다.

테오는 키의 이동 허가서를 발급받기 위해 사촌인 정부의 예술보호단체 장관 나이젤을 찾아간다. 나이젤의 미술관 입구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이 서 있고, 벽에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걸려 있다. ‘게르니카’는 파시즘이나 나치즘(독재)에 의해 희생된 지구촌의 현실을 말한다. 다비드는 히브리인들을 구한 다윗이니 당연히 미래의 구원을 뜻한다.

나이젤 머리 옆으로 대형 돼지 풍선이 떠다닌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오마주이다. 그 작품 속의 “파시스트보다는 돼지가 나아.”라는 대사이다. 나이젤은 고미술품 수집 애호가이다. 테오가 “미래가 불확실한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수집해?”라고 묻자 “난 아예 생각을 안 해.”라고 답한다. 이 얼마나 파시스트적 자본가와 공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인가?

나이젤의 아내 마사는 동물 보호 사업에 열중이다. 테오는 안가에서 새끼 고양이를 마주한다. 경찰과 군인들은 푸지들을 체포해 동물 우리 같은 데 가두거나 아예 동물원보다도 열악한 빈민촌에 집단 수용한다. 이건 자본가와 권력자는 국민을 동물만도 못한 존재로 본다는 의미인 동시에 인간보다 동물이 더 희망적이라는 암시이다.

즉 인류는 이미 20년 전부터 임신이 불가능해졌지만 동물들만큼은 아무렇지도 않게 번식이 유지된다는, 미래의 지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미래호는 노아의 방주이고, 키는 그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쥔 열쇠이자 성모 마리아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주 열악한 난민촌 ‘여인숙’에서 딸을 낳는다.

테오가 아이의 아버지를 묻자 키는 “난 아직 처녀이다.”이라고 답한 뒤 깔깔 웃으며 “어떤 놈인지 기억이 안 난다.”라고 정정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 처녀 생식이라는 또 다른 농담이다. 어쨌든 생부의 정체가 불분명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불임의 시대에 임신을 했으니 이는 신의 조화일지도 모른다는 암시.

키는 딸의 이름을 처음에는 바주카로 정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테오의 희생으로 미래호를 만나게 된 순간에는 딜런으로 하겠다고 정정한다. 테오의 죽음은 순교이다. 일부 아프리카계 흑인 및 중동계 흑인들 사이에서는 예수가 흑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곤 한다. 이 영화는 그 주장에 은근히 동조하는 가운데 인종 차별을 경멸한다.

마지막의 난민촌에서의 전투 시퀀스 롱 테이크는 이 영화의 백미 중의 백미이다. 딜런의 울음소리를 들은 군인들은 그를 안은 키를 향해 경배하듯 길을 터준다. 테오와 키가 미래호와 접선하기 위해 동굴에 들어갔을 때 벽에는 고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는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재스퍼는 키를 위해 희생하기 전 “탄생은 신념이고, 죽음은 운명이지.”라고 말한다.

아이를 낳으면 모든 성인이 공동으로 부모가 되자고 했던 플라톤의 공산주의, 죽음도 삶도 다 신이 정한 것이라는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 그래서 부패한 교회를 비판하며 자유로운 선택을 통한 자아실현을 외친 키에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 등이 담긴, 실존철학과 종교 정신이 가득한 걸작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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