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승화 아나운서. KBS 화면 갈무리.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방송 진행자가 지켜야 할 선은 어디까지일까? 또 공영방송 아나운서로서의 포지셔닝은? 강승화(37) KBS 아나운서가 지난 8일 오전 방송된 KBS2 교양 프로그램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의 ‘이인철의 모의 법정’ 코너에서 한 발언 때문에 논란이 일자 다음날 아침 동 방송을 통해 사과를 했지만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제가 된 건 10년 차 딩크 부부(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의 사연. 합의하에 딩크 부부로 살아왔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임신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10년 동안 정관 수술을 했다고 거짓말했다는 내용. 재연 화면 속 남편은 “당신이 딩크 부부를 원하니 그냥 거짓말하고 결혼했다.”라고 변명했다.

이어 “정상적인 가정으로 살면 좋지 않냐?”라고 말했고, 아내는 “지금 우리는 비정상적인 가정이냐? 이건 성폭행.”이라며 사기 결혼을 주장했다. 그러자 강 아나운서는 “성폭행? 아이는 축복이다. 이혼을 하니, 마니 하는 건 불편하다. 축하할 일이지 이게 이혼까지 갈 일이냐?”라며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인철 변호사는 “부부 간에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남편에게는 정관 수술을 했다고 아내에게 거짓말한 것과 정관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언제든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건데 세심하게 조심하지 않고 임신을 시켰다는 임신 주의 의무 위반 과실이 있다.”라고 정리해 줬다.

그럼에도 강 아나운서는 “요즘 아이를 못 가져서 힘든 부부들도 많은데. 아이는 축복이니까, 아이로 인해서 사람이 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왕 생긴 아이라면 잘 키우는 게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저 보편적으로만 봤을 때 임신은 축복이 맞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인식론이라는 건 시대마다 달라진다. 동시대일지라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하기 마련이다. 거시적인 안목과 미시적인 잣대는 저마다의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지 ‘반드시’나 ‘원래’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이 딩크 부부의 사안만큼은 미시적인 안목이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의 멀지 않은 과거만 하더라도 여자가 아들을 못 낳으면 소박을 맞았다. 지금 상상이나 될 일인가?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 이래 남존여비였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기독교 발생 이래 마리아 숭배 사상과 12~15세기 유럽의 기사도 정신은 겉으로는 여성을 존중하고 정신적 사랑을 추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즉 산타 루치아와 베아트리체의 순수한 정열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혼돈의 쾌락이 교묘하게 합숙했던 것이다.

결국 다수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은 성욕 혹은 번식이었다. 아니면 비즈니스이든가. 물론 순수한 사랑도 엄존한다. 바로 방송 속 아내였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다. 그래서 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붕괴될 가능성이 높은 다리는 건설하고 싶지 않았기에 딩크 부부를 제안한 것이었고, 남편이 흔쾌히 받아들였기에 결혼한 것이었다.

아내가 원치 않는 임신을 일방적으로 시켜 놓고서도 ‘정상적인 가정’을 운운하는, 제 잘못을 모르는 남편에게서는 강 아나운서와 똑같은 시대착오적인 ‘젊은 꼰대’가 엿보인다. 도대체 뭐가 정상일까? 고대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종하고 밀라노칙령으로 정식 국교로 선포하기 전까지 기독교는 이단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개종 후 마니교를 이단으로 규정했지만 그전까지는 맹신했었다. 마니교 교도들은 아직도 잔존해 있다.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욱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은 법과 도덕과 시대적 환경이 규정하는 것이지 개개인의 주관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자신의 개념의 잣대를 타인의 인식론의 눈금에 들이대는 건 굉장한 폭력이자 독단이다. 무조건 믿으라는 압제와 다른 게 뭘까? 강 아나운서 개인의 의식과 신념은 물론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그건 사적인 대화나 토론의 장에 국한되어야지, 공영방송에서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방식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도대체 어떤 가정이 정상적인 가정인가? 요즘 혼전 임신은, 특히 연예인의 경우 일상다반사다. 일반인 당사자의 부모들도 그런 걸 문제 삼는 일은 거의 없다. 아예 결혼식이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커플도 부지기수이며 그중에 2세를 출산한 커플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허수경이나 사유리 같은 비혼모를 보라!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과 응원을 받지 않는가? 그런데 결혼하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것도 아내와의 약속을 깨고 속여 가면서까지? 강 아나운서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들도 있는데’라며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려 했지만 그건 아나운서의 위치에선 할 말이 아니다.

언론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 진행자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저마다의 생각이 각각일 수많은 시청자에게 일방적인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면 1인 미디어를 알아볼 것이지, 공영방송의 3시간짜리 아침 교양 프로그램의 메인 MC를 맡는다는 건 과욕이다.

그는 ‘이왕 생긴 아이’이니 기쁜 마음으로 키워야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물론 사건이나 사고를 당하면 좌절할 게 아니라 현실을 인정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그 선에 머문다면 패배주의에 머문다. 극복해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노력은 할 줄 알아야 삶에 발전이 있고,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게다가 이 사례는 부부 간의 신뢰의 문제이고, 아직도 앞날이 창창한 젊은 남녀의 향후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부부관계의 갈등과 불신 얘기이다. 아내가 딩크 부부로 살겠다고 결심한 배경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신념과 애정, 그리고 청사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로드 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갖지 않아도 자신과 남편을 사랑하고, 자신의 성취감에 충실할 수 있다는 신념이 비정상적일까?

방송 후 KBS 시청자 권익센터에는 강 아나운서의 발언을 지적하는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KBS 청원은 30일간 1000명 이상이 동의하면 부서 책임자가 직접 답변을 하기로 되어 있다. 이미 그 숫자는 넘어섰다. KBS는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사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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