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꼬장꼬장하고 불같은 성격의 경제수장으로 알려진 사람이 있다. 위궤양으로 38세 때 위를 반이나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도 박정희 정권 전반기의 경제를 주재한 인물이다. 업무추진력은 뛰어났지만 괴팍한 성격과 거침없는 독설 때문에 부하직원들이 쩔쩔 맸다고 한다.

그가 경제부총리로 재직할 때, 업무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과장급 부하직원을 불러서 얼마나 호되게 야단을 쳤는지 호통 당한 그 부하직원은 정신이 없어서 출입문을 열고 나간다는 게 캐비닛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현역 시절 ‘핏대’로 불린 경제부총리도 있다. 사무관 시절부터 상부의 무리한 지시가 있을 경우 득달같이 반박을 하는 등의 패기를 보인 덕분에 붙여진 별명이다. 야당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답변을 좀 부드럽게 해줄 것을 부탁할 정도로 업무에 관한 한 ‘버럭’으로 유명했다.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 선생님께서 화를 내는 경제수장을 대면했다면 그들의 간(肝)을 걱정했을 것이다. 노여움과 스트레스의 감정이 간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적인 변화인 칠정(七情)이 장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의학 원전인 「황제내경」에서도 기술되어 있다. 오행설에 근거해 간(肝) 심(心), 비(脾), 폐(肺), 신(腎) 등 다섯 가지 장기(五臟)가 감정에 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일곱 가지 감정을 의미하는 칠정(七情)은 불교에서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지만, 한의학에서는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이다. 감정을 관장하는 주된 장기가 있지만 다른 장기들도 관여해서 서로 관련을 맺게 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불같이 성을 내고 화(怒)를 내는 감정은 간(肝)이 관장한다. 그래서 크게 화를 내면 간의 기운이 크게 상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얼굴이 붉어진다든지 눈에 충혈이 잘 된다든지, 귀가 멍먹하거나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울 수 있다.

웃음과 기쁨(喜)은 심장(心)에 속하는 감정이다. 적당한 기쁜 감정이 일어나면 우리의 정신이 평화로워지고 잘 소통이 되기 때문에 몸의 기운도 이완돼 느슨하고 편안해진다.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자주 웃어주는 게 좋다고 권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나치게 기쁨이 격렬하면 심장의 열이 올라와 얼굴이 붉어지거나 갑자기 기운이 빠지고 늘어지며 심장을 손상시키니 주의해야 한다.

근심이나 걱정이 많아 생각(思)에 골몰하면 기가 막히게 되고 정체하게 된다. 우리가 소화가 안되서 체한다는 말을 쓰는데 이 소화기에 관련된 비장(脾臟)이 상할 수 있다. 어떤 일 때문에 전전긍긍하면 입맛이 떨어지고 속이 체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기운이 잘 소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근심(憂)과 슬픔(悲)은 폐에 속하는 감정이다. 우울함 때문에 폐(肺)를 상하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등의 증상을 보이게 된다. 밤에 누워도 불안하여 편히 잠들지 못하기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마지막으로 두려움(恐)과 놀람(驚)은 신장(腎臟,콩팥)에 속한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공포심을 조장한다거나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 말라는 이유다. 어른이라면 견딜 수 있는 감정을 아이들은 받아들이지 못해 오장육부의 바른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의학은 마음과 육체를 함께 보는 전통을 갖고 있다. 마음을 다스려 몸을 바로 잡으려 하고, 또 몸 건강을 통해 마음을 바로 세우려는 심신일여(心身一如) 학문이다. 올림픽 구호로도 유명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Sound mind, Sound Body’)과 일맥상통한다.

세계보건기구가 1948년 제장한 세계보건헌장에도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오래전부터 진단과정에서 ‘마음이 안녕한지’를 살펴보았다는데 새삼 놀라게 된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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