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남. 여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할 때면 약혼의 유무를 떠나서 결혼의 징표로서 서로 교환하고 평생을 간직하는 것이 바로 반지이다. 옛날에는 금이 귀해서 구리반지로 대신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금반지도 보편화되었다.

금전적인 상황이 허락하면 다이야 반지 등 보석 반지로 교환을 하는데 전에는 남과 여자의 반지가 유별했는데 결혼반지도 커플링으로 비슷한 디자인으로 맞추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다면 한 평생을 약속하는 징표인 반지는 무엇인가?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보자. 반지는 “금, 은 그밖에 귀금속 또는 장식적인 재료로 만들어 손가락에 끼는 둥근 고리”라 정의된다.

반지는 통상적으로는 손에 끼우는 것을 지칭하지만 지역과 문화에 따라서는 발가락이나 귀에 끼는 것도 반지라 한다. 반지는 자기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장신구이자 자기의 사회적 지위나 권위, 충성의 상징 및 출신 학교 등을 나타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반지의 구성은 고리와 보석걸이 그리고 그것을 끼우는 홈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리는 원형, 반원형, 십자 4각형, 단순한 띠 등이 있고 보석걸이는 보석을 지탱할 수 있도록 넓고 두꺼우며 원뿔, 각뿔 모양, 동물 형상, 꽃장식 등이 있다. 홈은 원형, 타원형, 또는 실패 모양이며 고리 바로 위에 붙이거나 더 높게 만들기도 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반지의 역사를 보자. 초기 반지들은 둥근 모양의 금반지로 홈은 (타)원형 또는 직4각형으로 형상을 음각, 양각했거나 단단한 돌로 세공한 형상이나 인장을 넣어 만들었다. 이집트의 반지는 타 장신구처럼 연꽃, 이시스 매듭, 호루스의 눈, 뱀, 스핑크스 등 상징적인 형태를 새겼다. 헬레니즘 시대는 홍옥수, 석류석, 또는 납유리 등 천연 그대로 연마한 보석을 홈으로 고정시켰다.

로마 시대에는 동전 장식이나 뱀 장식이 널리 유행했고 2개 고리가 나란히 붙어 있어 두 손가락을 고정시키는 것도 있었다. 비잔틴 시대는 고리가 정교하게 투각된 타원형 홈을 가진 반지였다. 스키타이와 켈트 영향권의 북유럽은 동물들이 엉켜 있는 모양의 금반지를 만들었다. 중세시대~고딕 시대까지 원뿔형의 홈에 나뭇잎과 문장에 쓰이는 동물 형상이 장식되었다.

르네상스기의 엄지 손가락용 반지는 건축 모티브에서 착상된 정교한 장식을 새겼고 작은 진주, 여러 색의 돌들로 장식되었다. 17~18세기에 반지는 타 장신구처럼 보석으로 장식되고 반지홈은 길고 직4각형이 되었다. 19세기에는 다양한 반지가 존재했는데 보석홈에는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가 선호되었다. 인도와 아프리카 여러지역은 손가락뿐 아니라 발가락에도 반지를 꼈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에는 반지가 전혀 없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우리나라는 2짝의 고리로 된 것은 가락지, 1짝은 반지라고 부른다. 주로 금, 은, 구리 등으로 만들었으며, 오늘날에는 다이아몬드, 진주, 루비 등 보석을 끼워 만들기도 한다. 초기 철기시대의 평안남도 강서군 태성리 널무덤 유적에서 은반지가 발견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조악하고 소박한데 거의 출토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반지가 크게 유행하지 않은 듯하다.

반면 신라는 많은 금, 은 반지가 출토되었다. 가야는 그 출토예가 드문데, 양산 부부총에서 남주인의 은반지 10개가 출토된 바 있다. 고려시대는 반지가 유행했다고 보여지는데 유물은 거의 없으며 조선은 반지보다 가락지를 많이 애용했다.

그렇다면 ‘반지(ring)’는 어디에서 유래된 말일까?

‘ring’은 인도-유럽 공통 기어 ‘(s)krengn(구부리다)’이 게르만 조어 ‘hringaz(원)’로 변형이 되었고 이 말이 고대 영어 ‘hring/ hrincg(반지, 꽃장식, 원)’으로 유입되었다. 이 말이 중세 영어 ‘

ring/ ryng/ rink/ rynk’로 되었다가 최종 ‘ring’으로 정착하였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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